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4) 구약 번역, 개역성경, 그리고 개정 논쟁
1. 구약 번역의 시작과 완결 과정
한국어 성경 번역의 초기 단계는 주로 신약성경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신약만으로는 교회의 예배와 신앙 교육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구약 번역의 필요성이 점점 커졌다. 1890년대부터 언더우드, 아펜젤러, 게일(James S. Gale) 등 외국 선교사들과 한국인 협력자들이 구약 번역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구약은 신약보다 더 복잡한 히브리어 문체와 방대한 분량 때문에 번역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과 영어 성경(KJV), 중국어 성경을 참고하여 한국어 문맥에 맞게 풀어냈다. 1910년대에 들어 구약의 대부분이 번역되었고, 1911년에는 신구약 전체 한글 성경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영어 학계에서는 이를 “the first complete Korean Bible(최초의 완전한 한국어 성경)”이라 부르며, 한국 기독교 공동체가 비로소 성경 전체를 자국어로 소유하게 된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시기 구약 번역은 단순히 문헌적 성취가 아니라, 한국 신앙 공동체가 세계 기독교와 동등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2. 1938년 개역성경의 출현과 사회적 파급
구약 번역의 성과는 1938년 출간된 개역성경(Revised Version)으로 집대성되었다. 개역성경은 이전의 번역본들에서 드러났던 문체적 불균형과 직역적 어색함을 보완하고, 당시 한국어 구어체와 문어체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반영했다. 특히 한문투가 강하던 번역어를 보다 간결한 한글 표현으로 바꾸면서, 일반 신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경이 되었다. 개역성경은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출간되었기에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 교회는 성경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공간이 되었고, 성경 낭독은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영어권 연구에서는 이를 “Bible as a cultural resistance under colonial rule(식민지 지배 아래에서의 문화적 저항으로서 성경)”라고 규정한다. 개역성경은 이후 수십 년간 한국 교회의 표준 성경으로 자리 잡았으며, 설교·성경공부·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3. 개정과 개역개정 논쟁의 배경
시간이 흐르면서 개역성경은 언어적으로 점점 낡아 보이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한국어는 급격히 변화했고, 개역성경의 고어적 표현과 한자어 위주의 문체는 젊은 세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998년 대한성서공회는 개역개정 성경을 출간하여 현대어 표현을 적극 반영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학적 논란과 교단 간 갈등이 발생했다. 일부 보수 교단은 개역개정판이 원문 충실성을 훼손하고 교리적 균형을 무너뜨린다고 비판했으며, 다른 쪽은 현대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성경은 신앙 공동체의 힘을 잃는다고 반박했다. 영어 학계에서도 이 논쟁을 “the tension between fidelity to the text and readability(원문 충실성과 가독성 사이의 긴장)”라고 설명한다. 즉, 성경 번역은 단순히 언어 문제를 넘어서,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 권위의 문제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4. 성경 번역 논쟁이 남긴 신학적·언어적 의미
개역성경과 개역개정 논쟁은 한국 교회의 성경 이해와 신앙 실천 방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첫째, 번역은 단순히 언어 변환이 아니라 신학적 해석을 포함한 과정임을 드러냈다. 같은 단어를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신앙 공동체의 교리와 실천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성경 번역은 언어적 변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면 언어도 바뀌고, 성경이 시대적 언어를 반영하지 못하면 신앙 전승 자체가 어려워진다. 셋째, 번역 논쟁은 교단과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다. 종교학자 Lamin Sanneh는 이를 두고 “translation is always interpretation, and interpretation is identity(번역은 곧 해석이며, 해석은 곧 정체성이다)”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개역성경과 개정 논쟁은 바로 이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성경 번역은 언어적 과제이자, 신앙과 문화, 정체성이 얽힌 복합적 사건이었다.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3) 언더우드·아펜젤러와 한국 내 직접 번역 (0) | 2025.09.27 |
---|---|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2)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0) | 2025.09.26 |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1) 서론: 성경 번역과 한국어·신앙의 만남 (0) | 2025.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