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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2)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2)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1. 서구 선교사들의 초기 접촉과 제한된 시도

19세기 초 조선은 여전히 쇄국 정책을 유지하며 외세의 종교적 접근을 강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 번역은 직접적인 선교보다는 간접적 접촉을 통해 시도되었다. 중국과 일본에 거점을 둔 선교사들은 한국인 유학생, 상인, 망명객을 통해 한국어 성경 번역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과 알렉산더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 같은 선교사들이 초기 번역을 시도했으나, 이들은 한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고, 한국인의 언어 감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의 성경 번역은 단편적이고 미완성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영어권 학자들은 이를 “unrooted attempts(현지 기반 없는 시도)”라고 평가하며, 본격적인 성경 번역의 시작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고 분석한다.

 

2. 존 로스와 최초의 한글 누가복음 번역

본격적인 한글 성경 번역의 출발점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에 의해 마련되었다. 그는 중국 선양(Shenyang)에서 사역하던 중 조선 상인들과 교류하며 한국어를 배웠고, 그들과 협력하여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1882년 로스와 조선인 협력자들은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본인 『누가복음』**을 출간했다. 이는 단순히 성경의 일부가 번역된 사건이 아니라, 한국어 성경의 서막을 알리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로스는 번역 과정에서 구어체 한글을 적극 반영했기 때문에, 이 성경은 당시 일반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는 친근한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때문에 복음은 제한된 지식층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며, 성경은 동시에 한글 문해력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기능했다. 영문 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the first Korean vernacular Gospel of Luke(최초의 한국어 구어체 누가복음)”이라 부르며,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한다.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3. 이수정의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와 번역의 독창성

1885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출간된 이수정(李樹廷, 1842–1886)의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이수정은 개화파 지식인이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인물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번역본은 **일본어 성경과 영어 KJV(King James Version)**를 참고하여 번역되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인에게 적합한 어휘와 문체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드러난다.

특히 이수정의 번역은 단순 직역을 넘어서 신학적 해석과 한국적 맥락을 반영하는 특징을 지닌다. 예컨대 마가복음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의 시작이라”(KJV: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를 그는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에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복음의 근본이라”라고 옮겼다. 여기서 ‘근본’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시작’이 아니라 ‘본질적 기초’를 뜻하며, 한국인의 유교적 사유 속에 깊이 각인된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는 단순 번역이 아닌, 한국적 해석을 담은 언어적 선택이었다. 영어권 연구에서는 이를 “translation with theological interpretation(신학적 해석을 담은 번역)”이라고 부르며, 이수정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한다.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4. 신약 번역 태동기의 유산과 의의

로스의 『누가복음』과 이수정의 『신약마가젼복음셔언ᄒᆡ』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서로 다른 출발점을 보여주지만, 공통적으로 한국인에게 성경을 자기 언어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로스는 구어적 표현을 통해 복음을 민중 속으로 전파했고, 이수정은 일본과 서구 신학을 매개로 번역을 진행하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반영해 성경 해석의 틀을 마련했다. 이 두 작업은 한국 기독교의 언어적·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으며, 훗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그리고 한국인 번역자들이 본격적인 전 성경 번역에 착수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종교학자 Andrew Walls는 이 과정을 두고 “The Korean Bible was born through hybrid translation — a fusion of Western sources and Korean interpretation(한국 성경은 서구 자료와 한국적 해석의 융합이라는 혼합적 번역을 통해 탄생했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초기 신약 번역의 태동기는 단순한 텍스트의 변환을 넘어, 한국인의 언어·사유·신앙 공동체 형성에 깊은 뿌리를 남긴 역사적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