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3) 언더우드·아펜젤러와 한국 내 직접 번역
1. 한국 땅에 발을 디딘 첫 선교사들
1885년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바로 미국 북장로교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1859–1916)**와 감리교의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가 조선 땅에 들어온 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종교적 배경은 달랐지만,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번역한다는 같은 목표를 품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번역 작업이 중국이나 일본에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들은 한국 땅에서 한국인과 직접 협력하며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영어권 학자들은 이를 “the beginning of indigenous translation work in Korea(한국 내 토착 번역 작업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이때부터 성경 번역은 외부적 시도가 아닌, 한국인의 삶과 언어 속에 뿌리내리는 작업으로 전환되었다.
2. 한국인 협력자들과의 공동 번역 과정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한국어 실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협력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서상윤, 이성하, 김정식 같은 초기 신앙인들이 번역 작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성경을 단순히 직역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말투에 맞게 풀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예컨대 헬라어 성경의 단어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당시 조선 사회에서 이해 가능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이라는 표현,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 등이 정착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한국 개신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언어가 되었다. 영어권 연구는 이 과정을 “collaborative translation with cultural negotiation(문화적 협상을 동반한 협력 번역)”이라고 설명하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단독 번역자가 아니라 한국인 협력자들과 함께한 번역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3. 성경 번역과 근대 교육의 연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번역 활동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을 교재로 삼아 학교를 세우고, 근대 교육을 보급하는 일에 힘썼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과 언더우드가 설립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는 성경을 읽고 배우는 공간이자, 근대 학문과 사상이 유입되는 창구였다. 성경 번역본은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는 교재로도 사용되었고, 서구 사상과 기독교 윤리가 동시에 전달되는 매개체였다. 특히 아펜젤러는 번역된 성경 구절을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서, 단순한 종교 교육을 넘어 윤리, 역사, 언어 교육으로 확장시켰다. 영어 학계는 이를 “Bible as textbook for modernization(근대화를 위한 교재로서의 성경)”이라고 평가하며,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성경 번역이 언어와 교육의 촉매제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4. 한국 내 직접 번역이 남긴 유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주도한 한국 내 직접 번역은 한국 기독교사와 언어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첫째, 이 시기를 통해 성경 번역은 외국 선교사들의 일방적 시도가 아닌, 한국인과 함께하는 공동작업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 이 과정에서 형성된 용어와 표현은 이후 개역성경, 개역개정 성경 등 모든 한국어 성경 번역의 기초가 되었다. 셋째, 번역된 성경은 신앙 공동체 형성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 고양과 근대 교육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종교학자 Kenneth Scott Latourette는 이 시기를 두고 “the true rooting of Christianity in Korea began when the Bible was translated on Korean soil(성경이 한국 땅에서 번역되었을 때 비로소 기독교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번역은 단순히 신학적 사건을 넘어, 한국인의 언어와 사상, 그리고 사회 변화를 동시에 견인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4) 구약 번역, 개역성경, 그리고 개정 논쟁 (0) | 2025.09.27 |
---|---|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2) 초기 번역 시도와 신약 번역의 태동기 (0) | 2025.09.26 |
한글성경 번역의 역사 (1) 서론: 성경 번역과 한국어·신앙의 만남 (0) | 2025.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