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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사본학

5부: 성경 번역과 사본학 (22) 루터 성경 번역과 본문 비평의 시작

5부: 성경 번역과 사본학 (22) 루터 성경 번역과 본문 비평의 시작

1. 서론: 루터 번역의 역사적 전환점

마르틴 루터가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수행한 성경 번역은 단순히 언어적 작업이 아니라, 신학과 문화 전반을 바꾸어 놓은 거대한 사건이었다.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평신도들이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는 교회의 독점적 해석 권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루터의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 작업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사본을 기준으로 삼을지,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이는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의 출발점과도 맞닿아 있었다. 루터의 번역은 당대 학문적 상황, 인쇄술의 발달, 교회의 권위와 맞물려 신학적 논쟁을 촉발했다. 따라서 루터 성경은 번역의 산물이자, 본문 비평적 사고가 실제로 교회 역사 속에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루터 성경 번역과 본문 비평의 시작

2. 루터의 번역 원칙과 사본 선택

루터는 성경 번역을 진행하면서 라틴어 불가타(Vulgata)에 의존하지 않고, 헬라어 신약과 히브리어 구약 원문을 참조했다. 그는 인문주의 학자들이 편집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본과 당시 입수 가능한 히브리어 성경을 기반으로 번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선택은 큰 의미를 지닌다. 교회가 오랫동안 표준으로 삼아온 라틴어 성경 대신, 원문에 직접 접근하여 번역한 것은 본문 비평적 사고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루터는 단어 하나하나를 번역할 때 단순한 문자적 일치보다 의미 전달을 중시했으며, 독일어 사용자의 언어 감각에 맞게 조정했다. 예를 들어 신학적 용어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 표현을 사용했으며, 이는 독일어 성경 문체의 표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의 번역은 원문 사본을 중시하면서도 신학적 맥락과 언어적 이해를 결합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본문 비평의 시작을 보여준다.

 

3. 신학적 논쟁과 본문 비평적 의미

루터 성경은 출간되자마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가톨릭 교회는 루터가 불가타 대신 원문을 번역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았다. 특히 루터가 특정 구절을 해석할 때 원문 사본의 차이를 고려하여 기존 전통과 다른 번역을 제시한 부분은 신학적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 번역에서 루터는 “믿음으로”(sola fide)라는 해석을 강조했는데, 이는 사본의 언어적 특징과 그의 신학적 이해가 결합된 결과였다. 이러한 선택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이 되었지만, 동시에 교회의 교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본문 비평적 관점에서 보면, 루터는 단순히 기존 번역을 따르지 않고 사본의 다양성을 고려하며 독자적 해석을 시도한 셈이다. 이는 성경 번역이 단순한 언어 작업을 넘어 교리적, 역사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4. 루터 번역의 영향과 현대적 시사점

루터 성경은 독일어 통일과 문학적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번역은 독일어 문법과 어휘를 표준화했으며, 성경을 통해 대중이 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확산시켰다. 또한 루터의 번역은 이후 본문 비평학이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원문 사본을 중시하고, 다양한 전승을 비교하며, 번역 과정에서 의미를 따지는 태도는 오늘날 학문적 본문 비평의 핵심 원칙과 동일하다. 현대 연구자들은 루터 성경을 단순한 신학적 문서가 아니라, 본문 비평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평가한다. 더 나아가 루터가 보여준 번역 태도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원문을 존중하되 독자의 이해를 고려해야 하며, 본문 차이를 학문적으로 탐구하면서도 신학적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루터 성경 번역은 본문 비평의 시작이자, 신앙과 학문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