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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사본학

3부 : 주요 사본과 발견 (11)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특징과 신학적 의미

3: 주요 사본과 발견 (11)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특징과 신학적 의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기독교 신학사와 성서학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기원후 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본은, 단순히 오래된 문서라는 가치를 넘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 전승과 정경 형성 과정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글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물리적 특징과 역사적 배경을 시작으로,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의미와 교회사적 중요성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이 사본이 오늘날까지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특징과 신학적 의미

1.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물리적 특징 및 역사적 배경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은 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과 함께 3대 대문자 성경 사본으로 불린다. 이는 양피지로 제작된 코덱스(책 형태의 사본)이며, 4개의 커다란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773매의 양피지가 남아 있는데,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 그리고 일부 외경을 포함한다. 이 사본은 4세기 말 또는 5세기 초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의 학문적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본의 글씨체는 대문자로 쓰인 헬라어로, 띄어쓰기 없이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필사 방식은 당시의 일반적인 서사 전통을 반영하며, 초기 필사본 연구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사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마가복음 16장 9절-20절과 요한복음 7장 53절-8장 11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바티칸 사본과 시나이 사본에 이 부분이 빠져 있어 논란이 되는 것과 비교해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사본에는 1, 2 에스드라스와 3, 4 마카베오서와 같은 외경, 그리고 클레멘트 1서와 2서가 포함되어 있어,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문헌들을 정경으로 인식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사본은 17세기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키릴로스 루카리스가 영국 찰스 1세에게 선물하면서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현재는 영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처럼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그 물리적 형태와 역사적 전승 과정을 통해 고대 문서의 귀중한 증거물이 된다.

2. 구약과 신약의 본문 전승적 의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구약과 신약의 본문 전승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구약성경의 경우, 이 사본은 **70인역 헬라어 성경(Septuagint, LXX)**을 기반으로 한다. 70인역은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예수 시대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널리 사용되던 성경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구약 본문은 시나이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본문 비평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구약의 일부 책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다른 주요 사본들보다 더 많은 내용이나 배열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신약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이른바 **비잔틴 본문 유형(Byzantine Text-type)**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비잔틴 본문 유형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사본들의 특징을 공유한다. 이는 대부분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들, 특히 9세기 이후에 필사된 사본들과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비록 4-5세기 사본이지만, 이후에 주류를 이룬 비잔틴 본문 유형의 중요한 증거로 여겨진다. 이는 마르코복음 16장 9-20절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복음서의 결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전해졌는지에 대한 논의의 근거가 된다.

3.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신학에 미친 영향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단순히 성경 본문을 전달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초기 기독교 신학의 발전과 정경화 과정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이 사본은 정경의 경계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클레멘트 1서와 2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초기 교회가 어떤 문헌들을 공적인 예배와 교리 교육에 사용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비록 이 두 서신이 최종적으로 신약성경의 일부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이들이 한때 권위 있는 문헌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정경 형성이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의 논의와 합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둘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삼위일체론기독론 등 주요 교리 논쟁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본의 원산지인 알렉산드리아는 초기 기독교 신학의 중심지였으며, 아리우스 논쟁과 같은 주요 교리적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비록 이 사본이 직접적으로 논쟁에 개입된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신학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이나 칭호의 사용은 당시의 신학적 강조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4. 현대 성서학에서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중요성

오늘날 성서학 연구에서 알렉산드리아 사본의 중요성은 여전히 막대하다. 첫째, 본문 비평학의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본문 비평학은 현존하는 다양한 성경 사본들을 비교 분석하여 원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재구성하는 학문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과 함께 서로를 보완하며 초기 본문 형태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사본이 비잔틴 본문 유형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사본 중 하나라는 점에서, 비잔틴 본문 유형의 기원과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둘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초기 기독교의 **전례(liturgy)**와 예배 관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사본이 어떤 문헌들을 포함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글씨체와 배열 방식이 어떠했는지는 당시 교회의 예배와 교육 방식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시편과 일부 외경이 함께 묶여 있는 것은 당시의 공적 예배에서 구약의 시편과 기타 찬양 시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사본은 단순히 학술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 생활을 재현하는 데 중요한 역사적 증거로서의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