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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성경 번역과 사본학 (24) 현대 번역본(NIV, ESV, 개역개정)과 사본학

5부: 성경 번역과 사본학 (24) 현대 번역본(NIV, ESV, 개역개정)과 사본학

1. 서론: 현대 성경 번역과 사본학의 만남

현대에 널리 사용되는 성경 번역본들은 단순히 언어를 현대화한 결과물이 아니다. 오늘날의 번역은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의 성과를 바탕으로, 가능한 한 원문에 가까운 성경을 제공하려는 학문적 노력의 산물이다. 대표적으로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와 ESV(English Standard Version),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은 개역개정은 모두 사본학적 연구를 적극 반영한 번역이다. 이들 번역본은 고대 사본의 발견, 본문 비평학의 발전, 교단의 신학적 필요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제작되었다. 따라서 현대 번역본은 단순히 과거 번역본의 개정판이 아니라, 사본학적 증거와 신학적 판단이 긴밀히 결합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번역의 배경에 있는 사본학적 원리를 이해할 때,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현대 번역본(NIV, ESV, 개역개정)과 사본학

2. NIV: 가독성과 사본학적 균형

NIV는 1978년 처음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영어 성경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번역의 특징은 독자 친화적 언어와 사본학적 균형이다. 번역자들은 고대 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 사본을 폭넓게 활용하면서도, 지나치게 직역적인 방식보다는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의미 중심 번역을 채택했다. 특히 NIV는 알렉산드리아 전통의 고대 사본과 비잔틴 계열 사본을 모두 고려하여 본문을 결정했으며, 본문 차이가 큰 경우에는 각주를 통해 독자에게 알려 주었다. 이러한 방식은 신학적으로 민감한 구절에서도 공정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NIV가 과도하게 의역을 활용해 원문의 뉘앙스를 희석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는 본문학적 근거와 독자의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번역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3. ESV와 개역개정: 원문 충실성과 사본학적 선택

ESV는 2001년 출간된 이후 원문 충실성을 강조하는 번역본으로 자리 잡았다. 직역에 가까운 방식을 취하면서도 현대 영어의 흐름을 고려해 독해 가능성을 유지했다. 특히 본문 비평학의 최신 연구를 반영하여, 고대 사본에서 확인된 변이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후대 첨가로 판명된 일부 구절은 본문에서 제외하거나 괄호 처리하고, 각주를 통해 독자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국의 개역개정 역시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기존의 개역성경이 당시 사본학적 자료에 제한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개역개정은 현대 사본학 성과를 반영하여 본문을 교정했다. 다만 개역개정은 한국 교회의 전통적 용어와 표현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원문 충실성과 교회의 수용성 사이에서 절충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ESV와 개역개정은 사본학적 근거에 충실하면서도 신학적 공동체의 필요를 고려한 번역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4. 현대 번역본의 의의와 사본학적 교훈

NIV, ESV, 개역개정은 각기 다른 번역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본문 비평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과거의 번역본들이 제한된 사본 자료에 의존했다면, 현대 번역본은 파피루스, 사본 단편, 초기 교부들의 인용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이를 통해 성경 독자들은 보다 원문에 가까운 텍스트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번역의 선택 과정에 담긴 학문적 고민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대 번역본은 완벽한 결론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본의 다양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본문 비평은 끊임없는 연구 대상이다. 따라서 독자는 특정 번역본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기보다는, 다양한 번역본을 비교하고 사본학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현대 번역본은 단순히 읽기 편한 성경을 넘어, 신앙과 학문이 만나 원문을 탐구하는 지적 여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